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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도시, 목포의 시작

노마드 뷰 2018. 4. 10. 13:38

<테마기행>.1

근대도시, 목포의 시작

땅끝까지 달려온 기차. 1914111일 개통되어 100년이 넘게 호남의 젖줄이 되어온 호남선. 그 마지막 역이 이곳 목포다. 70년대엔 목포역에 기차가 도착하면 플랫폼에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많았던 도시, 목포. 그러나 도시의 눈물은 벽장 속 깊은 곳에 간직한 낡은 흑백사진처럼 흐려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멀어져 갔다.

[목포역 플랫폼 사진]

목포는 무엇이든 흘러와 고이는 곳이다. 종착역이란 그런 곳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된 뒤, 30년 동안 호남의 비옥한 땅에서 실려 온 쌀이 바로 이곳에서 배에 실려 일본으로 떠났다. 그 수탈의 고통에 이르면 목포의 눈물은 더욱 진해진다. 하지만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목포만의 슬픔을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목포진유적비 사진]

 목포는 내륙으로 뻗은 영산강이 바다로 연결되는 요충지에 있다. 이 때문에 영산강을 따라 온 호남과 경상 남부지역의 세곡 운반로로 사용된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곳이 목포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조선 태조 6, 1397년의 일이다.

 그후 세종 19년인 1437. 의정부에서 병조의 청을 받아 임금에게 아뢰기를 무안현 목포는 왜적들을 막기에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병선들이 정박해 있는 곳과 너무 멀어 불편하니, 청컨대 목포에 병선을 두고 만호를 보내시옵소서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얘기다.

 이것으로 이 포구는 역사 속에 목포라는 이름으로 공식 신고된다.

 [무안목포진지도 사진]

 유적비가 있는 이 일대가 목포진 성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목포의 역사가 시작된다. 육백 십팔 년 전의 일이다.

 1897101, 개항을 하면서 목포진은 사라지고, 목포는 근대 도시로 새롭게 태어난다. 포구에서 도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멀리는 영국과 러시아,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의 거상들이 붐비는 국제항구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개항장 목포는 전통적인 양반지배체제로부터 자유로운, 조선의 신분제가 겉돌게 되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개항 전 사진과 개항 후 사진]

 사람들은 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부나비처럼 몰려들었다. 새로운 학교와 서양의 근대 의술. 객주를 중심으로 시민계층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근대도시 목포의 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개항장의 이 새로운 움직임은 1905년 을사늑약 후 좌절된다. 일본이 호남지방을 원료생산지와 제품 소비시장으로 강점하기 위해 탐욕의 혀를 내민 것이다.

 

.사진 : 루덴스 dlaud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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