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가 이호신 화백
<삼산이수 인터뷰 1.> 지리산 화가 이호신 화백
‘이호신 화백의 화신(花信)’
사람들은 봄날 꽃소식을 ‘화신’(花信)이라 부른다. 시간은 흘러도 마음은 그대로 남아있다. 봄을 연모하는 마음일 것이다. 잊혀 진 줄 알았는데 이맘 때 쯤 이면 그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남사마을을 향하는 길 위에서 작년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남사마을의 ‘오매불망’(?)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던 동양화가 이호신 화백과 작년과 다름없이 봄꽃 약속을 했다. ‘산다는 것은 꽃소식을 듣는 일이요, 피어나는 꽃들은 모두 세상을 향한 그리움의 손짓’이라고 했다.
“향문천리(香聞千里)라고 매향은 천리까지 퍼진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향기를 코로 맡지 않고 귀로 듣는다고 표현했지요. 옛사람들의 매화에 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지요.”
<노마드뷰>의 첫 인터뷰이로 지리산자락 산청 남사마을에서 작품 활동 하는 이호신 화백을 찾았다.
▣ 산청에는 삼매(三梅)로 불리는 유명한 매화가 있다는데?
천년의 매화향기 그윽한 ‘산청삼매’를 먼저 봐야겠네요.
그 첫 번째가 ‘남명매’(南冥梅)입니다. 지리산 길목인 덕산 산천재(山天齋)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남명 선생이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뜻으로 뜰에 심은 뒤 벗 삼은 매화입니다.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른 이 매화 앞에 서면, 초야에서 권력의 타락과 폐단, 지식인의 허울과 나약성을 질타한 남명의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천왕봉을 우러르며 학문과 인격에 힘쓴 고결한 정신이 매화의 기상으로 되살아나 다가오는 듯하지요. 이 남명매는 천왕봉에 달이 걸쳐 있는 봄날 밤에 보는 ‘남명월매’가 제대로 된 절경입니다.
▲ 남명매 ⓒ 노마드뷰
산청삼매의 그 두 번째가 ‘정당매’(政堂梅)입니다. 단성면 운리의 단속사 터에 있지요. 이 매화는 남사마을의 원정매를 심은 하즙의 외손자로 ‘정당문학’(政堂文學) 벼슬을 지낸 강회백(1357~1402)이 소년 시절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고 합니다. 매화나무를 위해 비석과 비각이 세워진 곳은 아마 이곳밖에 없을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수령 640살 나무의 죽음입니다. 십 수 년 전 매화가지가 잘리고, 매화 곁을 지키던 후손이 마을을 떠나자 고목은 시들하다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했던 거지요. 한동안 형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는데, 고사 전에 매실을 채취하고 배양해서 묘목을 길러 냈고, 그것을 죽은 나무 둘레에 심어 새롭게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이제 단속사 터에 자리한 민가들이 다 이주하고 나면 새로운 모습, 아니 옛 원형을 회복하게 될 거라 기대해 봅니다.
▲ 정당매 ⓒ 노마드뷰
그 세 번째가 남사마을에 있는 ‘원정매’(元正梅) 입니다. 원정매는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고려 말의 문신 원정공(元正公) 하즙(1303-1380)이 심은 나무로 나이가 자그마치 680살로 추정합니다. 몇 해 전 원목이 고사되었는데, 다행히도 곁뿌리에서 자손목이 자라나기 시작했지요. 자신이 심은 어린 나무가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가 되리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 원정매 ⓒ 노마드뷰
원정매를 보고 돌아설 즈음 우리 일행은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았다. 마을벼룩시장인 ‘지리산 목화장터’의 구성원들이 남사마을 이씨 고가 마당에 모여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각자 음식을 한두 가지씩 준비해 와 함께 점심을 나누는 자리였다. 따뜻한 봄볕 아래서 매화향과 마을이야기와 봄나물로 만나는 점심식사는 공동체의 정겨움이 흠뻑 묻어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공동체(Commune)의 어원은 '남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사람'이라고. 그 날이 그랬다.
점심식사 후, 이 화백의 부인께서 운영하는 산청아트샵 ‘지금이 꽃자리’의 대밭 정원에서 인터뷰를 계속 이어나갔다.
▣ <화가의 시골편지>라는 책을 보면, 이호신 화백은 ‘이 땅을 순례하는 길 위의 화가’라고 했는데?
사는 게 다 순례 아닌가요. 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의 삶도 중요합니다. 타지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배우고, 타지의 삶과 새로운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문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앉아서 생각만 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되지요. 내 그림은 직접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립니다. 남명선생이 산천재에 사셨기에 의미 있는 것이지 그 터가 대단한 것은 아니듯이 순례에는 반드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성찰이 없으면 그건 순례가 아니라 여행이지요. 지리산을 택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 노마드뷰
글: 신승열
사진: 이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