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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갈계숲의 갈천과 수승대의 요수가 친구였던 까닭

노마드 뷰 2017. 2. 19. 23:30

 겨울 숲은 고요하다. 지난 여름 계곡을 무섭게 훑어내리던 물줄기도 얌전하게 땅 밑으로 숨어 버렸다. 숲으로 오후의 햇살이 낮게 기어든다. 인적이 끊긴 숲에는 햇살 한 줌과 바람 한 올이 놀고 있다. 또 다시 겨울이다. 우리의 바쁜 시간 속에서 가을은 차창 밖에서만 스쳐 지나갔다. 짐 꾸리기와 더불어 마음에 결을 세우는 무장을 하고 상경하는 길에 저만치 덕유산 기슭의 붉은 기운을 보았을까? 서울 일 한 자락 끝내고 돌아오는 길, 가을이면 붉은 치마를 두른다 해서 적상산, 졸음 가득한 눈에 다시 꿈을 꾸듯 그 붉은 기운이 스쳤을 것이다. 그렇게 대여섯 번을 오르내리는 동안 계절은 바뀌었다. 

    갈계숲과 수승대 사이 솔숲

 

지난 여름 폭우 때 무섭게 흘러가던 덕유산의 물줄기는 이제 한 없이 가늘어졌다. 가늘어졌으되 그 태초의 힘을 잃지는 않았다. 물은 강하고 바위는 여전히 겸손하다. 원래 이곳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였다. 사신을 근심으로 떠나 보냈다 하여 이름이 수송대(愁送臺)였던 것을 장인의 생신을 맞아 처가를 찾아 왔던 중년의 퇴계 선생이 얘기만 듣고 시를 지어 이름을 바꿔 부른 후 수승대(搜勝臺)가 되었다. 

    수승대 거북바위 너머 눈 덮인 덕유산

 

수승대가 가리키는 것은 거대한 거북 형상의 바위이다. 물 가운데 우뚝 솟아 섬처럼 떠 있다. 이것을 모현대(慕賢臺)라고도 부르는 것은 남명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현인들과 은사들이 찾았던 데에서 연유한다. 그들이 찾아와 남긴 흔적이 모현대 벼랑에 빼꼭하게 들어 차 있다. 맨 위에 시가 두 수 새겨져 있는데, 그 하나가 퇴계 선생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갈천(葛川) 임훈 선생의 것이다. 이곳에 은사들을 모으고 맞았던 주인은 요수(樂水) 신권(愼權) 선생이다.

  거북바위

 

갈천 선생과 요수 선생은 혈연으로는 처남 매부지간이지만 학문으로도 교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승대가 요수 선생의 터라면, 그 위로 5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갈계숲은 갈천 선생이 주인이다.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된 갈계숲은 덕유산 지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그곳에 이르러 동서로 갈라지면서 섬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갈계숲

 

2.3백년 생 소나무 오리나무 느티나무가 우거진 숲 안에 가선정(駕仙亭)이 있다. 이곳 또한 처음 이름은 은사(隱士)의 정원을 뜻하는 임정(林亭)이었다. 짐작컨대 이 두 은사는 갈계숲과 수승대를 오가며 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갈천의 물줄기가 흘러 수승대에 도달하니, 함께 나눌 약주통은 물 위에 띄워보내지 않았을까? 은사의 삶이 숲에 비껴드는 햇살과 바람처럼 자유롭게 느껴진다. 

  가선정

 

 지금도 여전히 갈계숲의 주인은 갈천이고, 수승대의 주인 역시 요수이다. 갈계숲이나 수승대를 거닐고 노닐었던 이가 어디 그들 뿐이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이곳의 오랜 정신적 지주였다. 요수 선생은 아예 관직에 나가지 않았고, 갈천 선생은 관직에 나갔으나 그것은 만년의 일이었다. 

   “벼슬은 남에게 받는 것이고, 나에게 간직된 인품은 하늘이 준 것이니 어찌 나에게 있는 것을 버리고 남에게 있는 것을 구할 것인가?” 요수 선생의 말이다. 

관직에 나갔던 갈천 선생 역시 임금이 치도를 묻자, “성상께서 수신하는 도에 전념하시고 쉬시지 않으신다면 치국하는 도와 학문하는 방법을 다른 곳에서 구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말했다.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겨울 숲은 고요하다, 수승대



갈천(葛川)과 요수(樂水)의 호에 모두 물이 있다. 그들은 물의 힘을 믿었던 것일까? 은사의 후미진 삶을 씻어내는데 그 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으리라. 

요수 신권 선생을 모신 구연서원의 문루에 관수루(觀水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물을 보는데(觀水)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맹자>의 글에서 따온 이름이다. 세상을 보는 일, 나 자신을 추스리는 방법을 일러 주는 말씀이다.  

  관수루에서 내려다 본 풍경

 

퇴계는 와보지도 않고 십리 밖 처가가 있던 영승에 앉아 수송대의 절경을 귀로만 듣고 시를 지어 그 이름을 바꿨다. 나도 한번 해볼까? 수승대(搜勝臺)에서 수승대(水勝臺)로. 물론 물이 이겼다는 뜻이다.  

  퇴계의 처가가 있던 영승마을 앞 강둑

글:이명행 / 사진: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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