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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Essay/강길원의 <우도 편지>

여기가 심연의 공간인가요?

노마드 뷰 2018. 5. 14. 21:20

강길원의 우도편지2 


"여기가 심연의 공간인가요?"

창작스튜디오 전시장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서니 두 작가가 수줍게 맞이했다. <2018년, 제5기 우도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전시회 '심연의 공간' 관람기>


1.

그림은 손으로 그린다. 손에 잡은 붓 끝에 깊은 사유가 묻어난다. 누군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작은 점, 뭉게진 면, 스물스물 이어지는 선들이 모여 기어이 만들어지는 화선지 위의 풍경들! 흰 벽에 가지런히 놓인 몇 점의 섬 풍경들이 겸손하다. 그래서 보는 이를 함께 겸손하게 만든다. 그러니 아마 작가의 삶의 태도 또한 겸손할 것이다. 내면의 고독도 그만큼 깊으리라.

작가의 섬세한 붓 터치는 보리밭의 흔들림이나 돌담 위에 서성이는 먼지까지 새겨논 듯 한데, 허리 구부리고 밭일하는 저 이는 오봉리 사람인가? 천진리 사람인가? 선명하지 않은 먹물 빛이 그걸 분간하기 어렵게 한다. 흐린 풍경 속 한 가운데 달랑 집 한 채 새겨진 소박한듯 품위 있는 그림을 그린 작가는, 이 섬마을에 일년을 겨우 살다 떠날 것이다. 그런 작가가 그림이라는 사물로 태어나게한 이 풍경은 작가의 것인가? 마을의 것인가? 휘리릭 스치는 그저그런 또 하나의 흔적인가? 이 그림들을 새기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먹과 벼루와 붓들은 작가의 가방에 담겨 또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 겸재정선 내일의 작가에 선정되기도한 신미정 작가는 무려 7년 여의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 조금 더 모아지면 아프리카와 남미를 여행할 계획이란다. 젊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팔아 맘껏 여행하는 시대는 언제쯤 올것인가?


2.

신화가 깨어났다. 검고 축축한 섬마을 신화가 가득한 벽! 98개의 저마다 다른 상징들이 바닷가 돌에 새겨진 푸른 이끼처럼 싱싱하다. 이곳은 심연! 아직 발굴되지 않은 오래된 신화가 젊고 철모르는 한 작가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섬을 가득 채웠다.

오래 전, 불덩어리 한 줄기가 바다를 뚫고 하늘로 치솟아 오를 때, 분명 동남풍이 불었을 것이다. 거대한 불덩어리는 주저앉아 봉우리가 되었고, 거센 동남풍에 휘날린 검붉은 용암들은 스르르 바다를 굳혀 섬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물속의 불덩이가 물 위의 땅으로 바뀌는 모습을 누군가 보았을 터, 너무 놀란 그 이는 입을 다문 채, 그만 구멍 숭숭 뚫린 바위 속에 스며 들고... 억겁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섬에 갇혀 있었을 것인가? 그 검은 입들이 젊은 작가의 붓 끝에서 깨어나 한 순간에 소란을 피우다니... 대체 그녀의 신화는 어디에서 왔을까?

강원도 고한, 탄광촌에서 태어났다는 작가는 예술가란 운명적으로 내림굿을 받는 무당임을 아는것인지, 작품들이 마치 신들과 나누는 수화인듯 하다. 혹은 검은 묵음들! 

흘깃, 작가의 붉은 방을 엿보면, 분명 명두와 가지방울이 명경 앞에 놓여있으리라!

- 세계여행을 꿈꾸는 동료를 바라보며,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난 안돼요 라며 한숨짓는 진주영 작가가, 한 때 사북에서 석탄을 손에 움켜쥐고 그렸다는 그림들은 지금 어느 벽에 걸려 누구를 위로하고 있을까?


강길원(글쓰는 건축가)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goo.gl/tDPwL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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