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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Essay/강길원의 <우도 편지>

미술관 한 채를 사다.

노마드 뷰 2018. 6. 18. 14:24


우도에 서고를 만들었다. 4미터가 넘는 높이의 서고에는 이미 책들이 가득 차있으나, 나는 또 무엇이 허기져 보수동 책방을 찾았는지 모를 일이다.


일요일에도 대부분 문을 연 좁은 비탈골목의 책방들... 남부 권역 헌 책방의 메카라 하지만 그저 한산할 뿐인 이 골목에서 오늘 나는 미술책 몇 권을 사서 메고온 가방에 넣어 갈 것이다.


운전면허 수험서와 만화책, 꽁꽁 묶인 개미를 스쳐 지나, 풍채 좋은 할배가 느긋하게 졸고 있는 외국도서 전문 책방에 슬그머니 들어서니, 눈을 번쩍 뜨시고는 ‘어이구 오랜만이야!’ 하신다. ‘어어, 여전하시네요. 허허허...’ 호들갑을 떨며 묘한 복장에 묘한 연령대의 사내 하나가 내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여전히 젊으시고...’ ‘여전히 멋지시고...’ 서로 덕담을 나눈다. 쏟아질 것 같이 빽빽히 꽂힌 책들을 쓰윽 훑어보며 사내가 ‘대가들과 사시니 풍채도 여전하시고...’ 하니, ‘요즘은 대가들이 안와!’ 하신다. 가만히 서있다 졸지에 대가가 아니게된 나는 슬그머니 나와 단골 책방인 ‘겸손을 나누는 서점’으로 갔다.


지난 번, 사진집을 구입할 때 보아 두었던 미술책 코너에서 먼지를 털며 책을 고르기 몇 시간! 미술책과 박물관 관련 책을 두칸의 서고에 줄세웠다. 88권!


책값 흥정을 위해 사장님을 부르니, 안된단다. ‘이렇게 좋은 책을 다 골라 가버리면 어떻게 장사를 하느냐?’ 하신다.
‘나도 이럴줄 몰랐다. 봐라! 이 가방에 이 책들이 다 들어가겠느냐? 원래 계획에 없던 일이 지금 내게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한권씩 사러 올 수는 없지 않느냐?’ 항변을 하며 버티니, ‘이제 이런 책들은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가 없다’며 진심으로 아쉬워 하신다. 이미 나는 흥정에서 졌다.


책 한권을 덤으로 얻은 것으로 계산을 마치니, ‘이걸 어떻게 제주도로 옮기지?’ 하신다. ‘기장 임시 숙소에 두었다 나중에 가져 갈것이다.’ 하였더니, 가게 문닫고 기장까지 실어다 주시겠단다. 그런데, 책들을 묶는 시간이 참 더디다. 한권 보고, 만지고... 한 숨 한번 쉬고... 뒤에 쭈그리고 앉은 내가 ‘마음 아프게 자꾸 한 숨 쉬고 할래요?’ 했더니, 칠십대 중반의 책방 단골 노화가께서 ‘좋은데 시집 보낸다 생각해! 책도 여행을 다녀야지.’ 하신다. 미술책들의 단체여행! 멋지다!


감사의 마음으로 책방 사장님과 저녁을 먹으며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우울하다. 세들어 운영중인 헌책방이 여덟 칸인데, 주인은 셋이고, 그 중 세 칸을 엊그제 내놓았단다. 이유인즉, 교회 건물인 그 칸의 새로 부임한 목사가 보증금과 임대료를 두배 이상 올리는 내용증명을 보내오는 바람에 버틸 수가 없었단다. 자기는 불교 신자인지라 ‘기독교 목사에게 애걸복걸 하기도 그렇고, 이제 슬슬 헌책방을 접어야지...’ 하신다.


1978년부터 보수동 골목에서 헌책방을 하였다니, 사십년동안 그의 손을 거쳐간 책의 권수, 활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밥알을 세는 만큼 부질없는 셈법이지만, 달리 경의를 표할 방법을 모르겠다. 일이년 내로 책방을 정리하고 은퇴하여, 쌍계사 스님 명령대로 화개장터 동네에 가서 사신다하니, 한번씩 찾아가 차나 얻어마셔야지!


숙소로 옮겨진 책들을 풀고, 한권 한권 물티슈로 먼지를 닦아 차곡차곡 책들을 쌓으니, 한 밤중에 이십이층짜리 미술관 건물이 떠억하니 세워졌다. 

이름하여 ‘modesty museum’ 겸손뮤지엄!


이제 이 미술관을 또 어찌 섬으로 옮길 것인가? 
이 납작하게 복제된 오래된 세상의 문물을...


글/사진 글쓰는 건축가 강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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