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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테마기행

님 그리워 우는 마음, 고하도 이야기

노마드 뷰 2018. 6. 27. 13:25

테마기행 / 네번 째

 

‣ 고하도

고하도는 목포항에서 1.2km쯤 떨어져 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차로 오갈 수 있는 섬이다.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닮은 정조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산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눈물

 

목포의 눈물 2절이다. 문일석은 왜 이런 가사를 썼을까?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이라면,

그 다음에 나오는 은 과연 누굴까? 문일석이 이 가사를 썼던 1934년은 일제 파쇼 통치기로 수탈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고하모 모충각에 모신 이순신장군 영정

 

문일석의 그리운 님. 물론 문일석만이 그리워했던 님은 아닐 것이었다. 당시 한민족이라면 누군들 이 님을 그리워하지 않았겠는가? 일제에게 토지를 수탈 당하고, 도로공사 강제노역에 동원됐으며, 목화 따는 일에 불려 나가던 것이 우리민족의 현실이었다.

 모충각

 

1597, 진도 울돌목 전투에서 크게 이긴 이순신은 같은 해 1029, 바로 이곳 고하도로 진을 옮긴다. 그 후 백팔일동안 그는 이곳에서 군사를 모집하고, 군량미를 비축하면서 전열을 정비한다. 이듬해 노량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기반을 바로 이곳에서 닦았던 것이다.

 

충무공은 전쟁이 확대되고 식량의 중요함을 느끼자 나주 고하도에 진을 설치하시고, 남은 곡식을 이곳에 쌓으신 뒤 군사를 뽑아 배치하고 별장을 두어 이들을 거느리게 하였다. 대개 이 섬은 해로에 처하여 남에서 서쪽에 연접한 땅이요, 오른편으로는 영남으로 연결되고 왼편으로는 다달아 가까운 전선에서 군량을 조달하여 승전을 기대할만하고, 멀리는 형재소에 계신 임금의 수리를 도울 수 있으니 그 국가를 위한 깊은 지모와 앞길을 내다보는 걱정은 우연이 아니도다.”

 

모충각에 모신 충무공 유허비의 내용이다. 이 유허비 역시 일제의 방자한 총탄에 깨지고 부서졌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땅에 묻어 버렸던 것을 찾아내 지금 이 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육지면 발상지 비석

 

1936년에 세운 조선 육지면 발상지 표지석이다. 일제가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심었던 목화씨를 구해다가 시험재배에 성공했던 곳도 바로 이곳 고하도였다. 당시 일제는 이곳 조선인을 흑인노예처럼 부렸다.


 , 방공호

 

이순신의 고하도에 한이 맺혔던 것일까? 유허비를 캐내 도륙했던 일제는 고하도를 파헤쳐

곳곳에 방공호를 만든다. 삼백년 전 이순신에게 패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망령이 1930년 고하도에 되살아 났을 것이다. 고하도는 고통스럽게 뒤척인다.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한반도는 대륙 침탈의 전초기지였다. 한반도 어디인들 이런 상처가 없을까. 그러나 고하도의 상처는 더욱 깊고 잔혹했다.

 목포 공생원, 감화원 건물

 

슬픈 역사를 가진 고하도. 이곳에 그때의 또 다른 흔적이 있다. 지금은 목포 공생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터에 일제가 사용했던 감화원 건물이 남아 있다. 얼핏 창고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당시 청소년 감옥이었다.

 

사백년 전 충무공도, 팔십년 전 그 소년들도 이 노을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고통스럽게, 그러나 비장하게 하루가 저문다.

 

 

.사진 : 루덴스 dlaud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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