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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이호신의 그림편지

일곱 번째 - 북한산 진달래

노마드 뷰 2019. 4. 18. 15:17

이호신 화백의 그림편지 7.  북한산 진달래

 

 

붓끝에 첫 숨 터지는 향기 북한산 한 바퀴

뺑 돌아 늦잠 든 나무들 슬몃 눈뜨게 하고

진달래 꽃빛에 물든 개연폭포 드맑은 물은

범종소리 노을로 번진 서쪽 바다로 향하네

                  - 이종성의 개연폭포 진달래

 

 청산(聽山) 이종성(李鍾成) 시인이 북한산에서 화첩을 펼친 내 곁에 머물며 쓴 시입니다.

지난 4월 초에 우리는 4년 만에 다시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사연인즉 한 잡지에 <새로 보는 북한산>을 함께 연재(월간 산, 2014~2015)한 이후지요.

시인과 나는 십 수 년 전 인사동 시낭송회에서 만났고,

이후 함께 산행하며 우정을 나누어 왔지요.

그는 지금 설악산(인제군 하추리)에 둥지를 틀었고,

저는 지리산골(산청)에 사니 북한산과의 해후가 특별합니다.

제가 서울 살 때의 집은 북한산이 잘 보이는 역촌동이었고,

그는 홍제동으로 1000회 이상 북한산을 등반한 산악시인으로

북한산둘레길을 소개한 저서 다함께 걷자, 둘레 한 바퀴 (2013)를 출간했어요.

출간을 감축하자 지리산으로 먼저 내려가 사는 내게 그가 말했습니다.

  

, 제발 북한산을 그리세요.

30년 넘게 북한산을 지척에 두었던 화가가 소홀히 하면 직무유기아닌가요.

나중에 후회 말고 한 달에 한번 씩만 올라와 같이 산행하자구요...”

  

저는 시인의 충고(?)에 뒤통수를 맞은 듯 아연하고 무참해졌습니다.

실은 전국의 산을 찾아 산마을과 산사를 그려왔건만

진작에 그려야할 북한산은 늘 미루었으니 등하불명(燈下不明)이지요.

결국 서울의 진산을 소홀이한 탓에 마음이 무거워 졌습니다.

하여 먼저 마음속에 지리산과 북한산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놓고

발길은 두 해 동안 꼬박 분주히 오르내렸습니다.

시인의 철저한 산행준비와 안내는 화첩을 채우기에 바빴고,

화실로 돌아와서는 오롯이 작품에 전력을 기우려야 했지요.

알지 못했던 북한산의 문화유산과 생태와 비경이 너무도 많았기에...

돌아보니 2003년의 빛바랜 북한산 화첩 이 마침내 시인을 만나

13권의 현장 화첩과 150여점의 원화를 낳기에 이르렀어요.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북한, 도봉산)되어

수많은 보도, 예술사진이 소개된 반면, 그림은 의외로 드문 편입니다.

과거 겸재(謙齋) 정선(鄭歚,1676~1759)이 그린 <장동팔경첩>

인왕, 백악산 일대의 명승지이고,

한강주변의 경관을 그린<경교명승첩>이 많이 알려져 있을 뿐이지요.

이 아쉬움이 시공을 넘어 시절인연을 만난 것일까요.

사계절을 두 번씩 북한과 도봉을 오르내리며

산이 품은 인문과 지리, 유산과 풍광을 시인은 쓰고 화가는 그렸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만한 북한산의 애모는 일찍이 없었다고 자부도 해 봅니다.

 

그 북한산길, 이슬에 젖은 달빛을 걸었습니다.

서리까마귀 우는 새벽별을 만났고 해돋이에 환호했습니다.

 비바람과 운해, 노을의 장관 앞에 나는 화첩을 펴고 시인은 상념에 잠겼지요.

한여름 솔바람의 그늘과 계곡 물소리에 귀 씻고,

옛사람이 남긴 암각서(岩刻書)를 탁본 하였습니다.

낙엽 지는 산사에서 듣는 풍탁과 범종소리.

그 여운은 아련하고 장엄하기에 이곳이 정녕 서울인가 싶었어요.

겨울숲을 오르며 생명의 본질과 삶을 성찰해야했고

설산에서 마주한 얼굴들은 모두 아름다워 반가운 청안을 나누었어요.

그 산 계곡에 물이 풀리면 눈 바위는 흰 이불을 벗어 해바라기하고,

우리는 마당 바위에 앉아 두런두런 봄 햇살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특히 북한산의 소나무와 진달래는 바위와 함께 잘 어울렸어요.

그 봄바람에 취해 산을 내려와 마시는 하산주(下山酒)

꽃처럼 향기로워 자연 마음도 붉게 물들었지요.

  

시인이 말합니다.

 , 만약에 서울에 북한산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도시의 범죄가 훨씬 늘었을 겁니다.

이 복잡한 도심의 삶에 허파와 휴식의 장소가 북한산이요,

고독한 이들을 품어주는 산이 아닐까 합니다.

저 보세요, 그룹행렬도 있지만 홀로 가는 반백의 사내들도 자주 보이지 않습니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시인의 말에 모두 동의했고,

그와 함께한 여정이 참으로 귀한 만남임을 그림으로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그 화첩에는 거반 청산 시인의 시가 옮겨져 있으니

우리 만남은 선현들의 풍류와 시화(詩畵)가 우리시대에 거듭난 것이지요.

이 마음속 행간의 뜻을 밝힌 시인의 글을 보고는 의미가 더 깊어졌습니다.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오붓해서 좋다.

인왕산은 소나무 산이며 바위산이다.

바위가 옹골지고 나무들은 포실하다.

그만큼 인왕산이 뼈대 있는 사대부가의 집처럼 살림을 잘했다는 반증이다.

능선에 선다. 능선에 올라서면 옛 한양도성의 면모가 한눈에 읽힌다.

또한 북한산의 웅장한 모습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평창동, 부암동, 창의문, 북한산, 안산, 홍제동, 백련산 등 어디를 보아도 아름답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 216)’

수성동(水聲洞)’, 필운대상춘(弼雲臺賞春)‘이나

강희언의 인왕산도(仁王山圖)‘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것도 참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옛 한양 도성은 물론 현재의 서울을 이해하고

그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왕산을 올라야 한다.

...

백사 이항복, 사천 이병연,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존재 박윤묵, 추사 김정희 등

당대 내로라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이 인왕산 자락에서 살았었다.

나는 이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겸재와 사천이 보여준

도반으로서의 우정과 의리를 조선 후기의 인문학을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은 으뜸 요소로 손꼽는다.

물론 그것은 진경문화를 두고 이르는 것이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통찰이며 그것은 두 사람이 진경산수의 세계를 열었듯이 새로운 장르를 여는 힘이다.

두 사람의 시와 그림이 합작되어 만들어진 시화집(詩畵集)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은 물론

인왕제색도도 그런 결과물의 하나다.

병석에 누운 친구 사천이 비가 개인 뒤 맑아진 하늘처럼 쾌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 이 설에 대해서는 미술사가들 이론에 여지가 있기도 하다)

조선팔도에 이만한 우정이 또 있었던가?

그것은 사천이 겸재가 양천현감으로 떠날 때 써 준 시 증별정원백(贈別鄭元伯)’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천의 시문은 겸재에서 나왔고, 겸재의 그림은 사천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동파가 말한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의 전범이다....                  

                                               <숲과 문화> (이종성 시인의 숲’ 2019 3.4월호 중에서)

    

 이 땅의 유산과 삶을 그려 온 나로서는

언제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붓길이길 희망하고 있지요.

이에 북한산은 다시 보는 산이 아닌 새로 보는 산이 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어요.

더불어 도심의 삶이 어우러진 생활산수로 오늘의 북한산을 증언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청산 시인의 수고와 성원이 늘 함께 했지요.

산을 듣는 다는 그의 아호(聽山)처럼 그가 들려주는 산 얘기 속에 나는 붓을 들었습니다.

이러구러 시인과 세 번째로 북한산의 봄을 맞이했어요.

이 인연으로 나의 해묵은 숙제를 풀어 준 그이에게

진달래 꽃물이 든 그림편지를 이렇게 띄웁니다.

, 북한산 진달래!

 

 이호신(화가)

 

▶ 대동문의 봄, 94x60cm, 2014. 5.

 

 ▶ 북한산 진달래 능선, 199x137cm, 2014. 5.

 

 

 ▶ 승가사 마애불(화첩), 90.5x31cm, 2014. 1.

 

▶ 탑과 꽃, 60x90cm, 2014. 4.

 

 ▶ 개연폭포 진달래(화첩)

 

 ▶ 물푸레나무와 평상바위, 62x93cm, 2014. 8.

 

 ▶ 북한산 소나무와 진달래, 140x70cm, 2014. 5.

 

 ▶ 북한동의 봄(화첩),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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