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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이호신의 그림편지

다섯번째 -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노마드 뷰 2018. 12. 6. 20:04

이호신의 그림편지 5.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작년(2017늦가을에 찾았던 원주의 <반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 167)는 거대한 우주였습니다.

아니 온통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게 한 수 만개의 은행잎은 세상의 옷이었지요.

그곳에서 옷을 벗어 짜면 노랑물이 줄줄 흐를 것만 같았으니.

 

은행나무는 전 세계에서 1(ginkgo biloba)밖에 없으며

약 3억 5천만 년 전 빙하기를 거쳐서 살아나온 나무라고 합니다.

이 나무의 세월을 헤아린다는 것은 어리석음이지요.

다만 전생의 일처럼 만남에 이끌리고 환영(幻影)에 젖었지요.

그리고 화실에 돌아와 수없이 붓방아를 찧었습니다.

하여 무딘 붓끝은 화실바닥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지요.

 

그 아련한 추억이 돌아오니 화실 창에 비친 마을의 은행나무입니다.

매일 눈만 뜨면 바라보이는 은행나무의 사계절을 함께 살고 있지요.

거룩한 생명의 증인으로상생의 인연으로!

하지만 무심한 내면은 결국 은행잎이 물들고

바람에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서야 다급해 졌습니다.

마침내 일기를 쓰고 붓을 들었지요.

 

 

노을 지는 하루 속에 은행나무와 함께 보낸 나는 바람 속에 스러진다.

매일 오늘을 살고 있으나 은행나무는 내가 살기 전에도 그랬듯이

나 떠난 후에도 노랑 잎을 떨굴 것이다.

어느 해 던 늦가을의 하루하루를 장엄하며

 

 

늦가을 바람 속에 먹먹하니 노을을 비껴보는 시간,

바람에 날리는 은행잎을 바라보는 일이 무상(無常일가요?

아니지요온전한 삶과 생의 찬란한 축제라 이르고 주문합니다.

잘 살아온 생애의 빛으로 흩날리는 것이지요.

오랜 세월 지상에서 살아 온 영혼의 나래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연민이 아니길 바라는 심정은 달빛에 잠긴 은행나무 앞을 서성일 때입니다.

충만한 기운이 우주를 감싸고 저도 은행나무도 하나의 별이 됩니다.

저는 이 순간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빈 잔을 채우며떠나가는 가을손님을 배웅하며.

 

 

글. 그림.  이호신   


 

 


 

▶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178x274cm, 한지에 수묵담채, 2017

 

 

▶ 노을 속의 은행나무, 92x64cm, 한지에 수묵담채, 2018

 

 

 

▶ 달밤의 은행나무, 92x60cm, 한지에 수묵담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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