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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이호신의 그림편지

열한 번째 - 다시 용유담(龍遊潭)에서

노마드 뷰 2019. 11. 4. 18:50

이호신 화백의 그림편지 11.  다시 용유담(龍遊潭)에서

 

 

유난히 미세먼지와 황사 현상으로 우울했던 계절이 지나고 청명한 가을빛이 한창입니다.

지난 일기에 희망의 삶을 기리며 독백으로 쓴 다 지나 가고 늘 새로 온다는 말이 이런 경우일까요.

지리산 하늘은 쪽빛이고 단풍은 능선에서 내려와 골짝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이 좋은 풍광에 모처럼 지인들끼리 가을 소풍을 떠나니 벽공(碧空)과 대지의 황금빛은 찬연합니다.

일행의 목적지는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의 용유담’.

 

이 길은 오랜 추억으로 지리산권 화첩순례가 떠오릅니다.

2010년 귀촌하여 산청에 화실을 마련한 후 지리산권역(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을 떠도는 중

이듬해 봄(2011.3.22)에 용유담에서 화첩을 펼쳤지요.

 

 

 ▶ 용유담, 2011. 3. 22.

 

 

이어서 다음해 가을에 이곳을 또 찾은 까닭은 특별했습니다.

소위 지리산댐(문정댐)’문제로 환경부와 시민단체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연일 기사화되고 지역주민과의 마찰을 빚고 있었지요.

문정댐이 들어서면 이 천혜의 경관자원인 용유담이 수장되고 만다는 우려로.

당시 이곳을 세계자연유산 등재로 추진할 계획이어서 더욱 논란은 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저를 불러내었어요.

예전에 환경기자로 인연이 깊었던 최화연(지리산 생명연대)님의 목소리는 간절한 바람 속에 떨림이었어요.

 

선생님! 청이 있습니다. 용유담의 비경을 그려서 세상에 알려 줄 수 없나요.

도대체 환경부, 국토부 등 관계공무원들이 용유담의 중요성을 모른답니다.

현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탁상공론만 무성하니 정말 속이 상합니다.

용유담을 그려주시면 이 그림을 참고로 댐 반대의 이유와 보전의 가치를 재차 설명하고 싶어요

   

 

전화를 받고는 이내 전율이 일었지요.

 이 땅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그려 온 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이가 일깨워주었으니.

예전 영월댐(동강댐) 건설계획의 무산을 위해<동강전도> <동강12>(1999년작)을 그렸던 기억도 다시 떠오르고.

    

 

이른바 환경운동이 무조건 국토개발을 거부한다면 시대의 명분은 아니지요.

사업에 앞서 충실이 검토하고 고심하여 오늘은 물론 미래의 세대들에게 누가 되지 말아야한다는 것.

그 소명에서 대안을 찾아야한다는 것이지요.

보세요, 20년이 지난 동강댐과 10년 전에 지리산댐이 건설되지 않아서 큰 문제가 일어났나요?

도리어 동강의 비경은 영월의 관광자원으로 보전의 가치를 나날이 더하고 있습니다.

 

 

 ▶ 지리산 용유담, 2012. 10. 11.

 

 

전화를 받고 망설임 없이 최화연 님을 용유담에서 만난 날(2012.10.11).

그날도 오늘처럼 가을빛은 선연하고 청명한 하늘아래 낮달마저 반겨주었지요.

지리산 칠선계곡을 에돌아 온 물이 기암 사이로 여울과 소()를 이룬 경관은 경이로웠습니다.

특히 이곳 바위들은 지질과 지형학적으로 지구의 원시성을 보유하고,

바위에 새겨진 암각서(岩刻書)는 인문(人文)의 보고(寶庫)로 조명되어야 할 가치로 느꼈습니다.

해서 그 비원의 전경을 담아 제작한 그림이<지리산 용유담>입니다.(171x271cm, 한지에 수묵채색, 2012년작)

    

 

▶ 지리산 용유담,171x271cm, 한지에 수묵채색, 2012년작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온 용유담엔 6명의 지인들이 모였습니다.

일찍이 이곳을 찾아 선인들의 지리산유람록(돌배개,2000)을 집필한

최석기 교수님(경상대 한문학과)의 제안으로 모였습니다.

지형학자인 기근도 교수님(경상대 지리교육과)와 흥선 스님(실상사 약수암),

지리산국립공원직원(민병태, 정혜종 님)과 저입니다.

특히 스님의 해후는 반가웠습니다.

 사찰은 물론 문화유산 지킴이로 존경받는 분으로 기 교수님이 모셨어요.

스님은 전국의 주요 비문을 탁본하여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고 계십니다.

해서 지금껏 궁금히 여겼던 용유담의 내력과 지질, 

리고 암각서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살펴 볼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행운입니다.

 

일행을 위해 최 교수님은 자료집을 준비해 왔어요.

그의 안내는 암각서의 위치와 해석이 일목요연하여 이곳을 다녀간 선인들의 체취를 만끽하게 합니다.

한편 이곳 바위의 지질을 알려주는 기 교수님의 설명도 명쾌하여

이 바위들이 태초 지구별의 조각이라는 사실이 실감났지요.

화강암도 성분의 밀도에 따라 세월을 견뎌내고 바위가 돌로, 모래와 흙으로 이행된다는 사실을.

그 미세한 흙이 바람을 타고 황사현상을 유발한다니 세상은 오롯이 시간여행인 듯싶습니다.

지층의 퇴적과 마그마 현상이 빚은 형상은 자연예술이고 원시와 오늘을 잇는 존재의 얼굴임을.

이러구러 오늘의 나그네가 잠시 그 만남의 시간 속에 서성이고 있을 뿐인지요?

    

 

어찌 보면 무상(無常)하지만 역사란 기록과 흔적의 자취를 돌아보고 오늘을 직시하는 일이거늘

선인(先人)들의 체취를 용유담 바위에서 만납니다.

이곳으로 오든 길목에서 잠시 마주한 <용담입문(龍潭入門)>을 시작으로 암각서를 살펴봅니다.

 

    

 

 ▶ 용담입문, 2019. 10.31.

 

 

<용유담(龍遊潭)> <방장제일강산(方丈第一江山)> <용유동천(龍遊洞天)> <용유대(龍遊臺)>

<독조대(獨釣臺)> <심진대(尋眞臺)> <경화대(庚和臺)> <영귀대(映歸臺)> <세신대(洗新帶)>

리고 인종(仁宗: 재위 1544~11545)이 혜평(惠平)강현(姜顯)공에게 하사한 땅이라는 뜻의

<인묘은사혜평강공현지지(仁廟恩賜惠平姜公顯之地)>가 붉은 글자로 드러납니다.

그 옆에는 조선 전기의 학자 점필재 김종직,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을 찾아 노닐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새긴 암각서도 선명합니다.

<점필재(佔畢齋) 일두(一蠹) 탁영(濯纓) 남명(南冥)장구소(杖屨所)>가 그것이지요.

이들은 모두 경남 지역의 명사요, 삶의 족적이 뚜렷한 분들입니다.

 

용유담은 예전 기우제(祈雨祭)를 지낸 곳으로 지방관들은 이곳을 신성시한 기록이 있지요.

지금도 무속의 자취가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용유담은 시각적 정취와 함께 빼어난 바위의 형상이 압권입니다.

이 기이한 바위에 대해 1790년 이곳을 찾은 조선후기의 유생 이동항(李東沆)의 기록은 흥미롭습니다,

    

 

 ▶ 용유담에서, 2019. 10. 30.

 

커다란 바위들이 시내에 쌓여 있었다.

지붕의 용마루, 평평한 자리. 둥근 북, 큰 항아리, 큰 가마솥, 성난 호랑이, 내달리는 용이 서있는 것,

엎드려 있는 것, 기대 있는 것, 웅크리고 있는 것 등

온갖 모양의 바위들이 계곡에 가득 차 있어 온갖 기괴한 형태를 이름 짓고 형용하기가 어려웠다.

그 중간으로 하나의 물길이 열려 큰 돌구유에서 수만 갈래의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내리고,

산이 무너지듯 흘러내리는 여울은 요란스럽게 쏟아져 요동쳤다...

 

    (최석기 외 역주성인들의 지리산유람록 3 보고사, 136)

    

 

▶ 용유담에서, 2019. 10. 30. 

 

길손은 마침내 화첩을 열고 가을 하늘을 우러르고 산빛에 취했습니다.

계곡 물소리 들으며 새삼 바위들을 응시합니다.

바라건대 오늘의 만남처럼 이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이 누대로 전해지길.

그 가치의 지속이 탁상공론이나 자본의 논리로 훼손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용유담 모임의 의미가 훗날에도 증언으로 지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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