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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이호신의 그림편지

나는야 흙에 살리라

노마드 뷰 2018. 5. 26. 18:55

 

나는야 흙에 살리라

                                                       

사람은 누구나 은연중에 제 꿈의 노래를 부르고 희망가를 흥얼거리나 봅니다.

거의 음치 수준인 나에게도 소위 18번 유행가가 있으니

송창식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입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 가사 중

​ “~모진 비바람을 맞아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은빛 피리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에 매료되어

​ 은빛 피리하나 물고서를 번안해 오직 화필하나 들고서로 부릅니다.

한 평생 방랑의 붓길로 살아 온 자조(自嘲)와 자부(自負)의 바람으로.


 


흙에 살리라에서는

  “~ 물레방아 돌고 도는 내 고향 정든 땅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

 ​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내 사랑 순이와 손을 맞잡고 흙에 살리라 ” 

귀촌 10년째인 오늘이 반추 됩니다.

일찍이 시골살이의 예감으로 부르곤 했나 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지리산골 산청의 남사예담촌에

두 개의 물레방아가 마을 상징으로 돌아가고,

4년 전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내려 온 아내의 이름 끝 자가 이니 말입니다.

수 일 전 화실마당의 텃밭을 아내와 일구며 이 노랫말을 떠올리고는 함께 웃었지요.

 

가수도 노래 속에 팔자가 있다고 하지 않소,

  ‘해뜰날을 부른 송대관은 무명에서 대번에 스타가 되었고

 ​()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은 현해탄 바다길에서 애인과 투신하고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도 일찍이 낙엽 따라 가버리지 않았소.

 ​이러고 보면 흙에 살리라는 예견된 우리의 노래인 것 같구려 허 허...”

 

결과적으로 흙에 살게 된 우리는 올해도 이랑을 일궈 모종을 심고 씨를 뿌렸습니다.

작년 늦가을에 파종한 마늘의 푸른 기운을 만끽하며

고추방울토마토참외가지오이를 두둑에 심고 담장 아래로 호박과 옥수수를 심었지요.

그리고 아욱쌈채소시금치얼룩콩쑥갓의 씨를 뿌렸습니다.

 

귀촌 10년째인 나보다 유년기에 농촌에 살았던 아내가 한 수 위여서

어느새 아내의 조수를 자청하니 삽질하고 퇴비뿌리고 물을 주는 일 입니다.

이렇듯 아침 저녁으로 흙에 묻혀 사는 일이 봄날의 일상입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봄비가 며칠간 내렸으니 참 때를 잘 맞추었다고 함께 기뻐했지요.

이 느낌을 저버릴 수 없어 한 문장을 대련(對聯)으로 짓고 붓을 들었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되는 장엄

생명의 씨와 비가 흙에 뒤척이는 일

 

이후 어느 날 우연 tv를 보다 유럽에서 채소 가꾸기의 산업화,

소위 농촌의 디지털 혁명 신화를 보게 되었지요.

모든 채소를 수효에 맞춰 일정한 양을 공장에서 생산하듯 보급하는 것이었어요.

과학적인 시스템으로 늘 일정한 신선도를 유지하여 큰 수익을 올린다는 보도입니다.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농촌산업화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 방송을 보며 내내 마음이 아릿해 오는 것이 있었으니 결코 낭만의 감상은 아니었어요.

그곳에는 하늘과 해와 달구름과 비바람과 새소리가 없고 나비의 나래 짓도 볼 수 없었지요.

한편 흙과 더불어 사는 생명의 존재들은 또 무엇들이 얼마나 있는지 ?

 

우리네 삶이 경제적 가치로만 행복지수가 될 수 없듯이

땅을 일구는 농부의 구슬땀과 노동의 신성함자연의 순리를 관찰하고 느끼는 감회는 매우 중요합니다.

함께 사는 인드라망의 세계는 사물의 존중과 감사를 알게 하고

생명의 소중함과 상생의 관계를 일깨워주지요.

 여기에서 문학과 예술의 씨앗이 자랍니다.

소우주의 세계를 만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도 합니다.

 

해서 귀촌 부부의 엉터리 농사도 의미가 큽니다.

함께 땀 흘리며 밭을 일구는 보람은 쏠쏠합니다.

생활에 활기를 주고 서로 협동하는 마음은 어떤 댓가를 바랄 수가 없지요.

나날의 변화는 새로운 추억을 낳게 마련이니...

 

어느덧 흙 속에서 씨앗이 싹터 오르는 광경을 목도하니 경이롭습니다.

한 순간 우주가 열리는 개안(開顔)입니다.

달빛에 젖은 새벽이슬을 바라보며 오늘도 아침 텃밭에서 마음으로 읊조립니다.

 

나는야 흙에 살리라

 

                                                                                                    이호신 (화가)

 

 

      

 

 

 ▲ <흙과 씨앗> 이호신 작, 70×140cm                              ⓒ 노마드뷰


 

 ▲ <텃밭의 봄> 이호신 작, 70×140cm                                ⓒ 노마드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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