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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이호신의 그림편지

지리산 청학동 불일폭포

노마드 뷰 2018. 7. 20. 12:22


 


    

인간의 삶은 항시 이상(理想)을 꿈꾸기에 이상향(理想鄕)을 그리지요.

살아서 찾는 유토피아요피안(彼岸)의 세계입니다.

죽어서 가는 길은 알지 못하므로 살아서 찾고자 헤매며 또 만나고 싶은 곳입니다.


여기에 푸른 학(靑鶴)이 산다는 전설의 이상향이 있으니 청학동(靑鶴洞)입니다.

전국에 40여개의 동일한 지명이 있으니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희구한 길지(吉地)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지요.

그 중에서도 단연 수많은 산행기를 남긴 곳이 지리산 청학동으로 회자됩니다.

 

지역 위치로는 지리산 쌍계사 불일암 불일폭포 주변의 경관을 지칭합니다.

이 청학동이 최근에 뉴스가 되고 주목받은 일이 있었지요.

 소위 불일폭포를 바라보며 즐긴 곳이라는 표석이 발견(2018.4.15.)되었으니 翫瀑臺’(완폭대)입니다.

석각바위는 폭150cm 높이140cm로 새겨진 글씨가

통일신라의 문장가 고운(孤雲최치원(崔致遠)의 친필로 전해지니 사실이라면 무려 1200년의 역사이지요.

그 기록과 증언이 끊어진지 200년만의 발견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성과는 지리산국립공원(신용석 소장)의 열정으로 직원 조봉근씨(48)가 찾아냈습니다.

조씨는 8년 전 지리산 하동지역을 저와 함께 산행하며 안내 해준 추억이 있어 반가웠지요.

여기에 또 특별한 이가 완폭대 발견에 기여했으니 이영규 선생(61)입니다.

대전의 고등학교 한문교사로 소위 지리산에 미친 산인(山人)으로

선인(先人)들의 산행기를 정리하고 그 루트를 따라 주말이면 지리산에 깃드는 이입니다.

그는 최석기 교수(경상대 한문학과)의 지리산 유산기(遊山記)에 심취하여 학구적 수혈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이가 조씨와 한 날에 산행하여 완폭대를 발견했지요.

 

그리고 이것이 오는 인연인가요?

지난해 봄부터 남사마을 화실로 저를 찾아 온 이선생의 열정과 성화에 못 이겨

마침내 함께 산행계획을 잡으니 청학동 불일폭포의 여정입니다.

이미 <불일암의 겨울폭포> (2010)를 그린 경험이 있기로 이번엔 초여름의 산행입니다.(2018.6.2.~6.3)

늘 그러하듯 길 떠나기 전 자료를 수습하니 수많은 산행시와 유산기가 마음과 발길을 제촉합니다.

 

먼저 청학동가(靑鶴洞歌)’를 지은 침굉현변(枕肱懸辯1616~1684) 스님의 시입니다.

    

 

지리산 청학동을 예 듣고 이제 보니

고운 최치원 선생의 종적이 곳곳에 완연하다.

우뚝 솟은 향로봉에 기암괴석이 빼어남을 다투고

창창한 송백과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폭포가 석지(石池)로 내려온다

햇빛이 연못의 물결을 뚫고 들어가니 산 그림자가 연못에 잠겼도다.

못 속에 잠긴 하늘의 흰 구름과 산영(山影)의 단풍사이로

한 쌍의 청학이 한가로이 노니는구나.

    

 

여기에서 한 쌍의 청학을 보았다는 것은 전래된 이미지의 수사로 보아야겠지요.

시상(詩想)은 때로 현실을 초월하므로.

이어 조선 중기의 문장가 유몽인(柳夢寅 1559~1623)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1611.4.7)의 행간을 주목해 봅니다.

    

 

... 나는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서 몇몇의 무리와 함께 동쪽고개를 넘어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절벽 밑에 이르자 승려들이 나무를 베어 가로질러 놓은 사다리가 여러 군데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컴컴하여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불일암(佛日庵)에 도착하였다.

암자 앞에 평평한 대()가 있고벼랑에 완폭대(翫瀑臺)라고 새겨져 있었다.

 폭포수가 검푸른 봉우리 푸른 절벽사이로 쏟아져 내리는데그 길이가 수 백자는 되어 보였다

... 하늘의 띠가 아래로 드리운 듯한 폭포가 쏟아져 온 골짜기는 우레 치는 듯 요란하고,

붉은 빛을 띤 안개와 흰 눈 같은 하얀 물보라가 골짜기 안에 이리저리 흩날렸다.

사람의 귀를 놀라게 하고 눈을 번쩍 뜨게 하여 정신이 맑아졌다.

이 날의 기이한 구경은 참으로 평생 다시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남쪽에는 향로봉(香爐峯), 동쪽에는 혜일봉(慧日峯서쪽에는 청학봉(靑鶴峯)이 있었다.

승려가 절벽의 구멍을 가르키며 저것이 학의 둥지입니다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붉은 머리 푸른 날개의 학이 그곳에 살았는데 지금은 몇 년 동안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당시의 유산기에도 완폭대가 보이는데 어떤 연고로 묻혔다가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는지?

향로봉은 별칭 백학봉으로 불리며 맞은편에 청학봉이 있는데

이에 대한 그림으로 정선(鄭歚,1676~1759)의 불일폭포’(간송미술관 소장)가 전해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적 이 없는 화가이기에 진품여부와 출처가 불확실하지요.

산행에 참여한 인원은 각처에서 10명이 모였는데

지리산국립공원(민병태조봉근유길환), 이영규(대전), 송연목(수원),

진임현조중제(부산), 안영희윤점희(서울),이호신 (산청)입니다.

 

이 산행은 특별히 저의 화첩기행을 배려하여 모두가 큰 배낭을 지고

저만 화구배낭이니 처음부터 끈끈한 동지애를 느껴야 했습니다.

이미 몇 차례 사전답사를 한 이영규 선생을 길라잡이로 따라갑니다.

먼저 내원암에 잠시 들러 자봉(慈峰)스님을 친견합니다.

이어서 목표인 불일폭포를 그리기위해서는 산세의 지형과 물길을 알아야겠기에 계곡을 따라 오릅니다.

불일협곡은 비탐방구역으로 특별히 국립공원의 배려로 길이 열린 것이지요.

 

소위 만물상폭포옥천굴(용천굴), 학연(鶴淵)을 향해 오르는데 가파른 벼랑과 바위협곡은 험준합니다.

초보자인 저를 위해 수차례 밧줄을 이어주고 몸에 감고서야

겨우 발걸음을 옮기니 백학봉과 청학봉 사이의 공간입니다.

이르기로 산신이 도끼로 양 봉우리를 쪼개 놓아 불일폭포가 이 계곡으로 흐른다지요.

몇 번이나 화첩을 열고 닫으며 마침내 불일암 길목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일행은 인근의 불일평전에 여정을 풀었지요.

저는 서둘러 불일암에 참배하고 翫瀑臺’(완폭대각자(刻字)를 찾아 탁본(拓本)을 뜹니다.

미리 준비해간 한지(124x68cm) 를 세로로 하여 상단에 탁본하고 한지가 마르기 전 불일폭포에 이릅니다.

8년 전 (2010)입춘 추위에 꽁꽁 언 얼음폭포를 손을 비벼가며 사생 후

<불일암 겨울폭포>(276x119cm)를 제작했지요.

그리고 전시로 발표했더니 해설사들은 나름 의미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 지금까지 얼음폭포를 그린 작품을 보지 못했네요.

폭포는 물이 쏟아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그림입니다.

작가는 소재의 의미를 새롭게 볼 수 있어야합니다.

작가가 당시의 기후조건에 맞닥뜨린 현장을 거침없이 담아 낸 작품이라고 보여 집니다

 

오늘은 그 폭포에 물이 거침없이 쏟아집니다.

폭포의 경관은 물론 주변이 청학동 형국이란 마음을 품고 보니

폭포 2단의 주변 바위가 마치 학의 양 나래처럼 보입니다.

폭포는 내리 꽂고 학은 솟구치는 형상이니 이미지의 반전이지요.

착시(錯視)라 할지라도 청학동의 인문적 해석과 풍류가 고양되는 현장이요풍광입니다.

이미 협곡을 거슬러 왔기로 청학의 둥지였다는 학연(鶴淵 )입구까지 발목을 적시며 내려가 사생하니

온전히 불일폭포의 위용과 계곡의 유장함이 실감납니다.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선조들의 얼과 영혼이 서린 곳이요초탈의 세계를 꿈꾼 고향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꿈에서는 분명 청학이 노닐고 있었겠지요.

 

그 천년의 밤을 불일평전에서 보내고 일찍 산길을 나섭니다.

불일폭포 주변산세를 사생하기 위함이지요.

먼저 청학봉 능선을 따라 고령대에 이르니 건너편의 불일암이 지척이고 계곡물소리 깊어옵니다.

숲을 헤치며 인근의 소은산막(素隱山幕)을 둘러보고 오후엔 백학봉 솔숲을 따라 오릅니다.

가파른 능선 솔숲에서 시야가 툭 터진 벼랑으로 내려오니 불일폭포가 허공에 떠 있습니다.

반갑기로는 절하는 심정으로 화첩을 열었지요.

그 사방으로 펼쳐진 산세와 창공의 아득함이라니...

또한 천길 단애 아래로 수많은 소()와 계곡을 에돌아가는 물길의 은빛 창랑!

마침내 하산 길쌍계사로 내려오며 도성암과 옥소암(사관원)을 찾으나 스님들을 모두 출타중입니다.

일행과 쌍계사 주변에서 냉면을 나누고 화실로 돌아오는 시간,

내게 행운의 기회를 마련해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새록새록 일었지요.

 

어느덧 한여름폭염 속에 붓을 드니 회포속의 불일폭포입니다.

현장의 화첩을 펼치고 밑그림을 그린 후 다시 탁본한 한지에 옮깁니다.

그 날의 감동과 감회가 붓길로 이어지길 바라며.

이 번 그림은 특별히 탁본에서 묻어나는 역사성과 오늘의 현장을 재구성하는 작업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날줄과 씨줄로 엮는 일이지요.

해서 여백에 적습니다.

 

무술년 (2018지리산 불일암 주변 완폭대 각자 발견 기념으로 탁본한 종이위에 불일폭포를 그리다

 

그리고 명제는 <불일암과 불일폭포>로 하고 낙관하였지요.

내친김에 빈 부채에도 그려서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보내니

모두 폭포바람 덕분에 여름 잘 나겠다고 답신이 옵니다.

이 모두가 시절인연인지 지리산 청학동 학술심포지음-한국인의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서...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주관 2018.6.18.)’가 개최되어 열띤 발표와 토론이 있었지요.

여기서 좌장을 맡은 최석기 교수는

청학동을 포함한 복합문화유산이 지리산에 많고 세계유산이 될 만하다고 하였고,

학술대회를 준비한 정혜종씨(지리산 국립공원 사무소)

현실에 있어 정신적인 가치로서 청학동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피력했습니다.

 

정녕 우리에게 이상향이라는 청학동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며 가능하기나 할까요.

모름지기 바람직한 지리산 순례가 이상향에 깃드는 일이요,

문화와 자연유산을 존중보존하는 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 장소성의 하나가 불일폭포 주변 경관으로 여기면 좋겠습니다.

이리하여 그 현장을 답사하고 그린 이도 보람 있기를 바랄뿐이지요.

폭염이 절정에 이른 어느 날,

세미나에서 만났던 순원 스님(쌍계사 박물관장이 화실로 찾아왔어요.

스님이 전해준 잡지 雙磎」 (쌍계제 86(쌍계사 발행)

졸작 <불일암과 불일폭포>이 표지화로 실렸습니다.

순간 더위가 물러가고 마음이 시원해져 옵니다.

 이러한 일이 선용(善用)이요이상향을 함께 나누는 기쁨’이지요.

 

 

                                                                                                                            이 호 신 (화가)

 

 

 

▣ 화첩 사생

 

 ▶청학봉 고령대에서 본 불일폭포                                                     ▶불일협곡과 폭포


  

 

  ▶백학봉에서 본 불일폭포                                                           ▶불일암


 

  ▶불일폭포                                                                                      ▶불일협곡 만물상폭포


 

  ▶학연                                                                                             ▶불일평전

 

  

  ▶불일암과 불일폭포                          ▶완폭대 각자 탁본

 

 ▶쌍계사 발행 잡지 <쌍계> 표지화

 

 

▶청학동 불일폭포 부채 그림

 

 ▶불일암 겨울폭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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