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Culture /이호신의 그림편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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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파초의 꿈 불꽃처럼 살아야 해 오늘도 어제처럼 저 들판에 풀잎처럼 우리 쓰러지지 말아야해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리 미워하지 말아야해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날까지 순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야해 정열과 욕망 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파초’(이건우 작사 / 수와진 노래) 초여름 마당의 파초를 바라보다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이 가사 중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에 추억이 아련합니다. 오래전 탄자니아와 인도의 인연으로 이국땅에서 만난 수많은 야자수들의 환영(幻影)이 떠오른 것이지요. 작열하는 태양아래 비를 기다리는 식물은 하늘을 마시고픈 열망으로 가득했어요. 또 그 너른 잎의 너울거림은 시원하고 마음은 창공을 ..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랜터 윌슨 스미스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중) 이 시를 다시 음미하며 화실 뒤 툇마루 주련(柱聯)에 스스로 쓴 ‘다 지나가고 늘 새로 온다’는 글을 매일 보는 나날입니다. 또한 “하지만 슬픔이 너무 길다. 고통이 너무 깊다. 오작교 없이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문병란의 ‘직녀에게’ 중)”는 시와 노랫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 화실 뜰의 홍매(화첩) 세상이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음하니 확진자와 그 가족은 물론 뉴스를 접하는 국민은 우울합니다. 이미 사정은 전 세계로 번져 지구촌의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이런 판국이니 청정지역 지리산 자락..

2020년 경자년(庚子年)이 밝았으나 세상은 우울합니다. 중국 후베이성(湖北省)우한(武漢)에서 발생한 폐렴(코로나 바이러스)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해서이지요. 모두 외출과 모임을 삼가고 마스크를 쓰고 사는 모습이 오늘의 풍속도 같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월대보름, 달을 따라 산청율수원 (山淸聿修園)에 모인 이들은 특별합니다. 사연인즉 진주의 정헌식 선생(한국차문화역사관장)의 초대가 있어서이지요. 정선생의 부인이신 정정자 선생님 교직 정년퇴임을 감축하는 자리에 열 명이 모였습니다. 그동안의 노고를 기리어 아름다운 한옥에 묵으며 대보름 달빛 속에 ‘소리 한마당’을 펼치자는 것이지요. 이에 동편제 김소현 명창은 구례에서, 원로 전각가인 이정환 선생은 대구에서 오셨습니다. 진주에서는 진주문고 ..

이호신 화백의 그림편지 12. 유네스코 세계유산-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찾아서 2019년 7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한 제 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이 대한민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관련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민적 여망과 성원이 함께한 결과입니다. 그동안 노력해 주신 대한민국 정부와 지자체, 서원 유림, 전문가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직도 현장에서 만세를 외치며 여러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던 감개무량한 순간이 아른거립니다. ... 2019년 9월20일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이사장 이배용 영주의 소수서원 입구 대형주차장에서 열린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등재’ 기념행사는 장엄하였습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9개의 서원 (..

이호신 화백의 그림편지 11. 다시 용유담(龍遊潭)에서 유난히 미세먼지와 황사 현상으로 우울했던 계절이 지나고 청명한 가을빛이 한창입니다. 지난 일기에 희망의 삶을 기리며 독백으로 쓴 ‘다 지나 가고 늘 새로 온다’는 말이 이런 경우일까요. 지리산 하늘은 쪽빛이고 단풍은 능선에서 내려와 골짝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이 좋은 풍광에 모처럼 지인들끼리 ‘가을 소풍’을 떠나니 벽공(碧空)과 대지의 황금빛은 찬연합니다. 일행의 목적지는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의 ‘용유담’. 이 길은 오랜 추억으로 ‘지리산권 화첩순례’가 떠오릅니다. 2010년 귀촌하여 산청에 화실을 마련한 후 지리산권역(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을 떠도는 중 이듬해 봄(2011.3.22)에 용유담에서 화첩을 펼쳤지요. ▶ 용유담, 2011...

이호신 화백의 그림편지 10. 설악산의 폭포바람 ▶ 비룡폭포 설악산에 둥지를 튼 시인의 집들이 겸 휴가로 두 가족 부부가 떠납니다. 운전을 못하는 내 사정에 모처럼 아내를 대신해 동행의 차와 남편이 운전대를 잡으니 참 좋습니다. 진주에서 출발하는 장거리여서 더욱 고맙고요. 무더위를 피해가니 내심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웅얼거리며 갑니다. ...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세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 길 떠나기 며칠 전 시인에게 ‘설악의 계곡과 폭포’의 경관을 주문했었지요. 해서 설악산의 길목, 국립방태산자연휴양림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인근에서..

이호신 화백의 그림편지 9. 환경과 예술이 행복한 섬 - 일본 나오시마 인문기행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 정현종의 ‘방문객’ 중에서 언제 부터인가 이 시를 읽은 후 제게 오는 인연은 각별하게 느낍니다. 아니 만남은 행운이자 무섭고도 거룩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촛불처럼 자신을 심지로 태우며 세상을 밝히는 이를 만나는 시간. 영혼의 합일이요, 나의 성찰이자 세상의 희망입니다. 최근 이 빛의 주인공들을 일본 섬 나오시마에서 만났습니다. 평소 ‘환경’과 ‘예술’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삶과 자연의 관계를 조망하며 ‘생활산수’를 그려 온 나로서는 특별했습니다. 이 만남은 신선한..

이호신 화백의 그림편지 8. 아름다운 뒷모습 - 퇴계(退溪)선생의 귀향길 그야말로 꽃비가 내립니다. 천지의 기운이 상서로운 춘풍가절, 청풍문화재단지의 4월 중순(2019.4.17) 아침. 청풍호 뱃길로 가는 길목에 갓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행렬이 특별합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꽃길에는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복사꽃도 고개를 내밉니다. 저도 그 길을 따라가며 앞산을 우러르니 어제 머물렀던 한벽루(寒碧樓)가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언덕에는 수많은 신록의 아우성이 파스텔톤 빛으로 찬연합니다. 이 풍광은 ‘봄날은 간다’의 아쉬움 보다는 나부끼는 깃발 속에 ‘축복의 길’로 설레는 마음입니다. 깃발에 새겨진 의 길입니다. 사연인즉 지난 4월10일에 서울 봉은사에서 출발한 재현단은 걷기11..

이호신 화백의 그림편지 7. 북한산 진달래 붓끝에 첫 숨 터지는 향기 북한산 한 바퀴 뺑 돌아 늦잠 든 나무들 슬몃 눈뜨게 하고 진달래 꽃빛에 물든 개연폭포 드맑은 물은 범종소리 노을로 번진 서쪽 바다로 향하네 - 이종성의 ‘개연폭포 진달래’ 청산(聽山) 이종성(李鍾成) 시인이 북한산에서 화첩을 펼친 내 곁에 머물며 쓴 시입니다. 지난 4월 초에 우리는 4년 만에 다시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사연인즉 한 잡지에 을 함께 연재(「월간 산」, 2014~2015)한 이후지요. 시인과 나는 십 수 년 전 인사동 시낭송회에서 만났고, 이후 함께 산행하며 우정을 나누어 왔지요. 그는 지금 설악산(인제군 하추리)에 둥지를 틀었고, 저는 지리산골(산청)에 사니 북한산과의 해후가 특별합니다. 제가 서울 살 때의 ..
이호신의 그림일기 6. 산다는 것은 꽃소식을 듣는 일 - 화첩 속의 '매화' 지난 겨울 독서 중 인상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凌壺觀 李麟祥 書畵評釋)』1.2(박희병 지음, 돌베개, 2018)입니다.이인상(1710~1760)은 개인적으로 매우 존숭해 온 조선의 서화가로 늘 제 마음에 자리 잡고 있지요.그런데 특별한 이 책은 저자의 20여년에 걸친 노작으로 지금껏 연구한이인상의 모든 것(작품과 생애)을 망라한 느낌이 들었어요.그림과 서예는 물론 특별히 매화를 숭상하고 아낀 대목에 밑줄을 긋고그의 독백을 들으며 새 봄을 기약하고 싶었습니다. 아! 이슬이 서리로 변해 초목이 시들고, 눈이 내려 음기(陰氣)가 여러 겹 쌓여 있을 때에 매화가 비로소 피는데, 깨끗하여 때가 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