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40)
노마드 뷰
생명과 평화의 길, 지리산 둘레길 ▶ 지리산 하동 악양 동천, 이호신 작, 69×275cm 길은 소통의 공간이자 ,공간의 연속입니다.길은 또한 생을 이어주던 삶의 공간입니다.우리는 이 길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려 합니다. 지난 2017년 여름에 발간한 『지리산 둘레길』 공식 가이드북에 쓴 도법스님의 글을 다시 봅니다.어느덧 십년이 넘었기로 ‘지리산둘레길 10주년’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국내에서 첫 둘레길을 낸 기록과 역사가 강물이 되어 흐릅니다. 이 시절인연은 저의 귀촌과 맞물려 전시(경남도립미술관 초대전 2018.3.15.~5.16) 가 열렸고『지리산둘레길 그림편지』 (산지니)도 출간 되었지요.지리산둘레길의 큰 머슴(상임이사)인 이상윤 씨와 공저로 나왔습니다.저는 ‘그린이의 ..
덕유산 자락에서 51년 부산을 회상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동족상잔(同族相殘)으로 기록된 전쟁.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려 인구가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해 1.4후퇴 이후 부산의 인구는 100만을 돌파한다. 주택사정이 심각해 산비탈, 공지, 하천변 심지어 남의 집 마당에까지 피난민들의 움집과 판잣집들은 파고든다. 움막이나 판잣집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천에서 잠자리를 해결해야 했다. “당시 부산의 거리는 피난민 무리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공포와 죽음과 혼란이 뒤섞여 춤추고……. UN군들의 왕래와 전선으로 나아가는 힘찬 청년들의 모습! 피난 살림에 갈증을 만난 민간인! 총, 칼, 싸움, 죽음, 상이군인, 학원, 친구, 도적, 살인, 강도……. 정말 혼란의 파..
나는야 흙에 살리라 사람은 누구나 은연중에 제 꿈의 노래를 부르고 희망가를 흥얼거리나 봅니다.거의 음치 수준인 나에게도 소위 18번 유행가가 있으니송창식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입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 가사 중 “~모진 비바람을 맞아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 은빛 피리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에 매료되어 “은빛 피리하나 물고서”를 번안해 “오직 화필하나 들고서”로 부릅니다.한 평생 방랑의 붓길로 살아 온 자조(自嘲)와 자부(自負)의 바람으로. ‘흙에 살리라’에서는 “~ 물레방아 돌고 도는 내 고향 정든 땅 ~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 고향을 버릴까 / 나는야 흙에 살리라 / 내 사랑 순이와 손을 맞잡고 / 흙에 살리라 ” 에귀촌 10년째인 오늘이 반추..
.3 유달산에 남긴 일제의 흔적 . 이난영의 친 오빠인 이봉룡이 쓴 이 곡은 전편인 에 나왔던 지명과 정서가 고스란히 반복된다. 그리고 ‘목포는 항구’라는 내용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목포는 항구다. 항구며, 안개 속에서 기적이 우는 곳,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이별의 슬픔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목포는 항구다’에는 항구가 뜻하는 한과 꺾이지 않는 저항의식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은 정신이 노래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유달산의 유선각은 이 발표되기 3년 전에 세워졌다. 개항 3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1935년, 목포는 이난영을 통해 삼백년 원한을 왜 다시 되새김질 하고 있었던 것일까? 유달산에 그 답이 되는 여러 흔적들이 남아 있다.오포유달산에 있는 오포. 정오에 포..
강길원의 우도편지2 "여기가 심연의 공간인가요?"창작스튜디오 전시장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서니 두 작가가 수줍게 맞이했다. 1.그림은 손으로 그린다. 손에 잡은 붓 끝에 깊은 사유가 묻어난다. 누군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작은 점, 뭉게진 면, 스물스물 이어지는 선들이 모여 기어이 만들어지는 화선지 위의 풍경들! 흰 벽에 가지런히 놓인 몇 점의 섬 풍경들이 겸손하다. 그래서 보는 이를 함께 겸손하게 만든다. 그러니 아마 작가의 삶의 태도 또한 겸손할 것이다. 내면의 고독도 그만큼 깊으리라.작가의 섬세한 붓 터치는 보리밭의 흔들림이나 돌담 위에 서성이는 먼지까지 새겨논 듯 한데, 허리 구부리고 밭일하는 저 이는 오봉리 사람인가? 천진리 사람인가? 선명하지..
강길원의 .1 우도에 고기잡이 배가 두 척 뿐이라고? 어제 늦은 밤까지 기분좋게 통일술을 마시고 헤어지며, 다음날 일찍이 천진항 선착장에서 보기로 하였다. 새벽에 겨우 일어나 찾은 선창에는 배 두 척이 그물을 털고 있었고, 몇몇이 팔장을 끼거나 뒷짐을 진 채, 그물 주변에 둘러 서 있었다. 우도에 살면서 고깃배 그물 터는 작업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양쪽에 선 두 어부의 손에 끌려 올라오는 녹색 그물에 모든 이의 눈이 집중되고, 분주한 와중에 몇 마디씩 던지는 농들이 숙달된 어부의 일터에 끼어들었다. 해는 이미 떠올랐고, 수면 위로 반짝이는 빛들! 그 생생한 아침만큼 살아 펄떡이는 고기는 보이지 않고, 객주리 몇 마리와 소라 몇 개가 바닥에 던져졌다.그리고 처음보는 이상한 고기 한 마리. 돈치, 일명 달고..
목포의 눈물 - ‘삼백년 원한 품은‘이 ‘삼백연 원한 풍은’이 된 사연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이난영은 1916년 목포 육전거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목화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는 열여섯 살에 ‘태양극단’의 목포 공연 때 막간 가수로 처음 무대에 섰다. 그 후 그의 재능을 알아 본 손목인이 작곡하고, 문일석이 가사를 쓴 이 1935년에 발표된다. 목포의 애국가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다. 90년대 까지 호남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가 승리를 거둘 때마다 팬들이 목 놓아 합창한 노래가 ‘목포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단지 응원가만이 아니었다. 한(恨)과 설움으로 살아온 이 땅의 사람..
고마운 일이다. 누구의 손길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맞을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람이 떠나면 풍경도 변한다. 비 갠 후 복사꽃 흐드러진 이 길이 왜이리 정겹고 눈물 겨운지... 사진.글 이종헌 ▲노마드 뷰 ▲노마드 뷰 ▲노마드 뷰 ▲노마드 뷰 ▲노마드 뷰 ▲노마드 뷰 ▲노마드 뷰
지리산 화가 이호신 화백 ‘이호신 화백의 화신(花信)’ 사람들은 봄날 꽃소식을 ‘화신’(花信)이라 부른다. 시간은 흘러도 마음은 그대로 남아있다. 봄을 연모하는 마음일 것이다. 잊혀 진 줄 알았는데 이맘 때 쯤 이면 그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남사마을을 향하는 길 위에서 작년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남사마을의 ‘오매불망’(?)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던 동양화가 이호신 화백과 작년과 다름없이 봄꽃 약속을 했다. ‘산다는 것은 꽃소식을 듣는 일이요, 피어나는 꽃들은 모두 세상을 향한 그리움의 손짓’이라고 했다. “향문천리(香聞千里)라고 매향은 천리까지 퍼진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향기를 코로 맡지 않고 귀로 듣는다고 표현했지요. 옛사람들의 매화에 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지요.” 의 첫 인터뷰이로 지리산자락..
강 산 바다 모두를 품고 있는 땅, 하동은 수려한 곳이다. 장엄한 지리산 기슭을 돌아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변에 봄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면 화개골은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빈다. 올해 하동의 꽃소식이 요란하다. 봄꽃이라 불리는 온갖 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려 온 산과 들을 한꺼번에 부풀려 놓았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탓에 매화와 동백 산수유는 늦었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배꽃 앵두꽃 벚꽃들은 이상고온으로 며칠새 다 피어 버렸다. 두 계곡 사이에 낀 쌍계사와 화개골은 질 꽃 필 꽃 없이 서로 뒤섞여 그야말로 꽃대궐... 사진.글 이종헌(사진가) ▲쌍계사 가는 길 ⓒ노마드 뷰 ▲화개골,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하얀 벚꽃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마드 뷰 ▲섬진강변 ⓒ노마드 뷰 ..